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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3 이발
  2. 2013.10.31 시인의 말 모음 2
  3. 2013.06.18 기형도 - <오래된 書籍>
  4. 2013.06.17 버릇
  5. 2012.11.28 김애란 작가 강연 메모
  6. 2012.11.08 전공

이발

2013. 12. 13. 00:16 from w

 낡은 바리캉으로 머리를 잘라 손님들의 머리를 벌레먹게 하는 이발소가 있었다. 나는 이 노인정 옆 이발소의 고정 손님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그 때까지 나는 두발자유에 대해 어떠한 이견도 없던 학생이었다. 앞머리가 이마를 가리면 온몸이 답답해지는 터라, 스포츠형 머리나 반삭발은 편해서 오히려 고마웠다. 블루클럽이라는 희대의 프렌차이즈 미용실이 처음 생기기 전까지 푸르스름했던 내 머리에는 항상 완두콩 크기보다 작은 살색 구멍이 두어개 씩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주말마다 집에 오시는 아버지를 따라 차를 타고 40여 분이 걸리는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유난히 하얀 가운을 걸치고 지나치게 까만 머리를 가진 이발사 아저씨와 노란 색에 검고 작은 땡땡이 무늬가 프린트된 원피스를 입은 아주머니 직전의 여성이 그 이발소 직원의 전부였다. 공교롭게도 이발소 안에 있는 네 명이 모두 말이 없는 사람이라 이발사의 이런저런 지시 말고는 텔레비전 소리가 가장 시끄러웠다. 텔레비전에는 언제나 재미없는 한국 프로 축구가 틀어져 있었고, 그 때마다 노란 유니폼을 입은 성남 일화가 다른 팀을 앞지르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가죽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이가 되면서 나는 모든 이발소를 퇴폐이발소처럼 여기고 손님이었던 나를 창피해했다. 알 수 없는 외국 고유명사 미용실의 외국 이름을 단 헤어 디자이너의 단골이 되기 전까지, 나는 블루클럽의 VIP였다. 가격 파괴를 위해 과감하게 상고머리 손님이 직접 고개를 앞으로 숙여 머리를 감게 하는 그 곳. 이발사였던 외할아버지에게 기본적인 기술을 배웠던 어머니에게 5000원이 넘는 이발비는 사치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미용실을 다녀와서 그 머리에 얼마나 들였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거짓으로 답한다.


 남성이 못생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머리를 예쁘게 자르는 것이다. 비싼 옷과 화려한 신발을 사는 것보다 귀 위를 덮는 머리카락과 구부러지는 뒷머리 정리가 먼저다. 짧은 머리는 긴머리보다 빨리 자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보일 때마다 옆머리와 뒷머리를 체크해야 한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신기하게도 나의 호르몬은 내가 하는 야한 생각의 총량과는 관계가 없는지 월경처럼 정확히 한 달의 주기로 머리를 지저분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예정일 며칠 전부터 나는 그 숭고한 행위를 상상하며 설렌다.


 


○ 토끼가 그려진 분홍색 바리캉이 있다. 그 바리캉을 사용하는 미용사들의 실력에는 괜한 신뢰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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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모음

2013. 10. 31. 23:15 from w

 내가 시집을 고르는 방법 : 우선 시집의 앞부분을 펼쳐 시인의 말을 확인한다. 시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책을 바로 덮는다. 마음에 들 경우 차례에 있는 시 제목들을 훑어보고 막연히 마음에 드는 제목이 보일 경우 그 페이지를 편다. 아주 길지 않은 시라면 한 번을 내리 읽어보고 좋으면 다른 제목의 시를 두어 번을 골라 읽은 뒤 역시 좋다면 사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여러 번을 반복했는데도 와닿는 시가 없다면 다른 시집을 고른다.





 1. 기형도 시집 - <입 속의 검은 잎>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 11)



 2. 심보선 시집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분열하고 명멸해왔다.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2008년 봄

심보선



 3. 심보선 시집 - <눈앞에 없는 사람>


詩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2011년 8월

심보선



 4. 나희덕 시집 - <사라진 손바닥>


'도덕적인 갑각류'라는 말이

뢴트겐 광선처럼 나를 뚫고 지나갔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욱 단단해지던,

살의 일부가 되어버린 갑각의 관념들이여,

이제 나를 놓아다오.



5. 황병승 시집 - <여장남자 시코쿠>


거울 속의 네 얼굴은 꼭 내 얼굴 같구나

우리 서로 첫눈에 반해버렸지만

단 한 번의 키스도 나눌 수 없어

이제부터 나는 기다란 수염을 달고

아무런 화면도 보여주지 않을 거야


2005년 여름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내가 대신 네.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이 나를 부르지 않으면

우리는 가만히 있는다


2012년 겨울

황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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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 <오래된 書籍>

2013. 6. 18. 00:26 from w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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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2013. 6. 17. 11:09 from w

 버릇이라 하면 내가 알아채고 나면 이미 하고있거나 하고 난 행동이어야 하는데 그 기준으로 본 내 버릇을 정리해보면,


 1. 손 물어뜯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 손을 물어뜯었다. 손톱이며 손톱 및 살이며 사마귀나 굳은살까지. 남에게 폐를 끼치는 버릇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초조하게 보이고 깔끔하지 않은 버릇이라 고치고 싶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딱 한 번 군대에서 고참이 신변을 협박하여 약 두 달간 이 버릇을 고치는 것을 성공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바로 원상복귀. 절실하게 해결책을 찾고있다.

 2. 자동차 번호판 계산

중학교 수학 시간에 어떤 수가 3의 배수인지 확인하는 방법을 배웠다. 몇자리의 수가 되든 모두 더했을 때 그 한자리 정수가 3, 6, 9중 하나라면 3의 배수라는 것. 난 그 사실이 정말 신기해서 그 날부터 집에 가면서 보이는 모든 차 번호판의 숫자를 더했다. 그 당시만큼의 집착은 아니지만 난 아직도 그런 무의미한 덧셈을 나도 모르게 가끔씩 하고있다.

 3. 말버릇

최근에 알아챈 내 버릇인데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잦은 빈도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또는 줄여서 "근까", "까"이런 말을 넣어 말을 한다. 남들이 알아챌만한 정도로 잦지는 않지만 어찌됐든 말하기 버릇이 생기면 사기꾼같고 촌스러워 보여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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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 강연 메모

2012. 11. 28. 13:45 from w

 "저는 농담을 아주 좋아해요. 농담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많아요. 하지만 <비행운>이라는 제 예전 작품들과는 좀 다른 어두운 글을 쓰면서 농담을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결하려고 하니 그건 잘 안되겠더라고요."


 "어른이 되는 과정은 어쩌면 실망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쓰는 글을 비롯한 모든 글들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 더 잘 익숙해지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문학이란 '나는 겨우 인간이구나'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은 자신의 감정을 연습할 수 있는 최고의 대상입니다. 열심히 연습하시길 바라요."


 "제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은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에요. 어머니에 대한 자전적인 소설이면서 어머니에 대한 슬픔과 미움이 모두 들어있거든요."


 "제가 작가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돌아보면 말을 할 때 문어와 구어를 함께 구사하고 있더라고요. 좀 창피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아요. 그리고 사실 그런 비유적인 멘트들이 다 제 작품이나 글에서 썼던 것들이고 사실은 엄청나게 갈고 닦은거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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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2012. 11. 8. 17:49 from w

 아무래도 국문학을 전공했으니 변변치 않은 글이라도 그냥 써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인사치레 비슷한 권유를 들을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 나에게는 내가 보고 경험한 것 전부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에 어떤 소설적인 질서를 부여할 힘이 없다고.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생각하면 멀쩡하게 조리가 정해졌던 흐름이 혼란스러워진다. 그것을 혼란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들이 내게 글을 써보라는 말이 단지 내가 국어를 전공했다는 이유에서 농으로 나온 말일 때가 많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또 나에 대한 비위가 상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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